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
'자신을 완전히 바꾸고 싶다'
'지금까지의 자신을 통째로 내다버리고 새 출발 하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의 자신’을 통째로 버릴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에 관한 인식을 반전시켜야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절대신이 빅뱅을 일으켜 우주를 창조하고, 거기서부터 연쇄작용이 일어나듯이 잇달아 사건이 일어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옛 유대・기독교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한 시간관이다. 우리는 그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의 개념은 정말로 맞는 것인가? 이 시간의 관점은 고전적인 서양의 관점에 불과하다.
한편, 아비달마의 불교 철학에서는, ‘시간은 미래로부터 현재, 과거를 향해 흐르고 있다’라고 명시한다. 현대 분석 철학에서도 그러한 견해가 있다. 나는 어떠한 의미에서 이러한 시간관에 동의한다.
・ 자신이 강의 한가운데에, 상류 쪽을 향해 서 있다고 상상해보자.
상류에서 빨간색 공이 떠내려 온다. 손을 뻗어 그 공을 잡을지의 여부는 당신에게 달려있다. 만약 빨간 공을 잡지 않았다고 하자. 잠시 후 파란색 공이 표류해서 떠내려 온다. 그런데 이 파란색 공이 떠내려 온 것은, 당신이 빨간 공을 손에 쥐지 않았던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냥 파란색 공이 떠내려온 것, 그뿐이다. 즉, ‘빨간색 공을 잡지 않았다’라는 과거는, ‘파란색 공이 떠내려 왔다’라고 하는 미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과거는 미래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이와 같이, 시간은 강의 상류라는 미래에서부터, 당신이 서 있었던 현재로, 그리고 당신 뒤편에 있는 과거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해도, 나는 노력이 부족했는지, 삼류 대학에 밖에 입학하지 못했어'
'지금도 삼류 중소기업에서 밖에 일하지 못하는 처지다’
라고 말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 그럼,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간식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고 하자. 그런데, 우연히도 계산대 앞에 긴 줄이 생겼다. 당신은 그 긴 줄 끝에 잠시 기다렸지만, 처음 보는 아르바이트생이 계산대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지, 긴 줄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 번거로워졌다. 그래서 제품을 다시 선반에 되돌려 놓고선, ‘꼭 내가 오면 이렇다니까’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조금 멀리 돌아가는 길에 있는 슈퍼에 들렀다고 치자. 그러자, 그 가게에서는 방금 전의 편의점보다 같은 제품이 1+1으로 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어, 운이 좋은데?’라고 생각을 하며, 조금 이득을 본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귀가했다.
이 예에서는, 첫 번째 가게의 행렬을 당신은 ‘꼭 내가 오면 이렇다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째 가게에서는 사려고 했던 간식이 1+1으로 팔고 있어서, 첫 번째의 '꼭 내가 오면 이렇다니까’가 ‘어, 운이 좋은데?’로 바뀌었다.
그렇다는 것은, ‘미래에 의해서 과거가 바뀌었다’라는 점이다. 과거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과거를 만든다’는 점이다.
이렇게 우리는, 미래에 의해 과거가 바뀌는 예를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미래가 최고라면, 과거도 현재도 최고다
‘미래가 과거를 만드는 것’은, 자신의 일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동기부여도 책임감도 없는 부하가 있다고 하자. 곁에서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불안하다. 혼자서 제대로 일처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연장선 상에 미래가 있다’라는 것을 전제로 부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부하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라고 나쁘게 생각해 보고 있으면, 못하는 점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어제 만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려보는 예'에서 제사한 것처럼(아래 포스팅 참조),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다고 생각해도, 실은 본 것 같은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것도, ‘이 녀석은 이런 놈이다’라고 하는 과거의 신념에 의거하는 기억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하에 뛰어난 점이 있어도 그것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부하를 성장시키고 싶은 경우에는, 우선 자신이 부하를 ‘과거 베이스로 판단하고 있다’라는 점을 먼저 깨우쳐야 한다. 그리고 견해를 바꾸어, ‘미래가 과거를 만든다’라는 시점으로 부하를 바라본다. 부하가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미래로부터 보면, ‘그렇게 우왕좌왕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큰 배움과 성장이 있었다’라고 하는 과거로 변모한다.
즉, ‘좋은 미래’로부터 바라보면, 어떤 현재도 과거도,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를 향해 흐르고 있다.
과거는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미래가 과거를 만든다.
미래는 최고라고 확신하면, 과거도 현재도 최고이다.
이것이 만인에게 공통되는 시간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 원칙대로 시간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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