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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마인드셋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생각(#PTSD #트라우마)

by 후니훈 - Mindfulness A to Z 202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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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적인 사람일수록 깊게 상처받는다

어른이 되면 마음속은 많은 상처로 가득 찬다. 감정에 휘둘리는 어른이 많은 이유가 마음의 상처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매정한 말을 들거나, 충격적인 일에 휩쓸리게 되는 등,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의 상처는 깊어져 간다. PTSD (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는 충격적인 마음의 상처는, 트라우마(심적 외상)이라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에 상처를 안고 있는데,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마음의 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병이 되지 않고 치유되어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럼, 그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는 의외로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 중의 하나인데,

마음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는지, 우울증 등의 질병을 일으키는지 아닌지는, 사건 그 자체의 크기와는 상관이 없다.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이라도 트라우마가 되는 사람도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이 양자 간에는 무엇이 다른가 하면, 본인이 느끼는 불합리함의 정도가 다른 것이다.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어떤 사람은 ‘굉장히 불합리하다!’라고 느끼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이건 좀 불합리한데…’라고 느낀다.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따라, 느껴지는 불합리한 정도도 달라진다. 그럼, 무엇이 불합리한 정도의 차이를 낳는가라고 하면, 그것은 자기 책임감의 크고 작음에 달려있다.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그 사건의 불합리한 정도는 작고, 반대로, 그 사건에 대해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불합리한 정도는 커진다. 즉,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서,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싫은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의 사람은, 마음의 상처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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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곧 잘 화를 내는 직장 선배가, 

“저기, 이 일, 서둘러 부탁해!” 라며, 내 사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일을 통째로 나에게 맡겼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이미 다른 일로 여유가 없어, 선배의 부탁을 받아들이면 주말의 시간을 희생하지 않으면 해낼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 선배는 성질도 잘 내는 사람이라, 지금까지 당신은 몇 번이나 선배의 분노를 샀던 경험이 있다. 그런 점들을 생각하며, 당신은 일단 정중하게 거절해 본다. 

“지금, 저도 너무 바빠서… 정말 죄송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선배가 갑자기 화를 내며, 

“야, 하~ 나도 항상 네 일을 봐주고 도와주고 있잖아! 근데 너는 그딴 식으로 나오는 거냐?!” 라며 성질을 낸다. 

그리고 그 화가 너무 격해서, 당신은 트라우마가 될 것 같은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 


 

이런 경우에는 두 가지 반응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내 상황은 생각도 하지 않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네가 나쁜 거잖아!'라며 마음에 상처를 받으며,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라는 것을 전제로 상대를 비난하는 패턴. 

또 하나는, 상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이 사람 너무 바빠서 그런가 오늘따라 너무 까칠한데? 하긴 나도 항상 도움받는 처지라 피차일반이다'라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려고 하고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패턴. 

전자와 같이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경우, 선배와의 관계가 어색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한편, 후자와 같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 선배에게 혼난 충격을 받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진다.

불합리한 사건에 조우했을 때, '아무런 책임도 없는데 나만 처참한 상황에 놓였다'라며 상대를 비난하는 사람을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고 한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같은 사건을 앞두고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도 마음의 상처가 깊어진다. 그리고 그 마음의 상처에 오랫동안 사로잡히게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것은, 예를 들어, 밤길을 혼자 걷고 있는 와중에 누군가에게 습격당한 여성에 대해, '주의가 부족했던 그녀에게도 책임이 있다'라고 비난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일에 처해진다. 왜냐하면 삶은 원래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도처에 존재하는 불합리함을 받아들이겠다'는 도리에 입각하여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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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추상도를 올리면 트라우마는 빨리 치유된다

위와 같은 이야기는 정신 의학 세계에서 잘 알려진 것이다. 병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해서, '모든 병은 자기표현이다'라는 시점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감기의 두통이나 발열은 '몸을 쉬게 해라'라는 자기표현임과 동시에, 그것은 타인에 대한 '나를 좀 더 소중하게 여겨 줬으면 좋겠다', '좀 더 쉬게 해 달라'는 자기표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마음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어 질병의 증상을 일으키는 것도, 마음의 상처를 타인에게 표현하고 싶다는, 무의식의 자기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예를 들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자려고 누워 있다가도 큰 소리를 외치며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갑자기 큰 소리를 외치는 것은, 같은 집에서 지내는 다른 가족 구성원에 대한 자기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도, '가족이 안심하고 잘 잘 수 있도록 조용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 상처는 이미 트라우마가 아닌 것이 된다. 즉, 질병의 증상이라고 하는 고통을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추상도를 올려, 자기중심적 자세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마음의 상처는 더 이상 트라우마가 아닌 것이 되어, 병의 증상은 사라지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에 좌우되는지의 여부는, 당신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멈출 수 있는지', 혹은 '자신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아닌지'로 바뀐다. 마음에 상처를 입어도,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 '서로 피차일반이다'라고 받아들인다면, 그 상처는 반드시 치유될 것이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마음이 상처받는 일이 일어났을 때, '전부 상대방 책임이다'라고 타인을 비난하기만 하는 사람은 추상도가 낮은 사람이다.

반대로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추상도가 높은 사람이다. 사고의 추상도가 올라갈수록, 나의 시야 속에 많은 타인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추상도를 올리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상사로부터 불합리한 이유로 혼이 났다고 해도, 분노하는 상사의 상황에도 사고가 작동하는 것이다. 상사가 격노할 정도로 좌절하게 만드는 회사의 매니지먼트의 문제점에 눈길이 가는 식으로 말이다.

추상도를 높이면 우리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해방된다. 마음을 다치는 일이 있어도, 그 혼란스러운 감정에 휘둘리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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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파도를 멈추고 그냥 바라보자

그래도 감정이 물결치면 그 파도의 근원이 무엇인지 내성적으로 음미해보자. 이것을 '지관(止觀)'이라고 한다. 『마야지관』이라는 불교서에 쓰여 있는 번뇌를 멈추고 보는 방법이다. 감정이 폭주해 버리는 것은, 폭주의 시작을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식은 통제하여 감정이 폭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의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의 움직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라이벌 시 하고 있는 동료로부터, 나의 업무성과를 깔보는 듯한 발언을 해서 화가 났을 때, '자신은 왜 화가 났는가?'라고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싫은 소리를 들었으니까'라고 하는 것만으로 생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관에서는 감정의 움직임을 의식에 올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상세하게, 분석적으로, 감정의 움직임과 그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화가 난 것은 라이벌인 그 녀석에게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별로 의식하지 않은 동료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면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녀석과는 타입도 다르고 일하는 방식도 다르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일을 하면 그만이다

조금 싫은 소리를 들은 정도로 화를 내다니... 나답지 못하다

 

이처럼 지관에 의해 자신의 감정의 움직임을 멈추고 보는 것은,

'추상도가 올라간 세계관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추상도를 올릴 수만 있다면, 노력할 필요도 없이 감정은 자연스럽게 컨트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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