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분노, 질투... 생산성을 낮추는 '감정의 파편'은 내다 버려라
- 사소한 실수에 당황하면 좀처럼 우울한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그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패닉이 계속된다.
- 일요일 오후가 되면 내일부터 다시 일할 생각을 하니 우울해진다. 평일에는 빨리 일을 끝내고 집에 가고 싶어서 어쩔 수 없다. 언제까지 이런 걱정을 하면서 인생을 보내야만 하는 것일까......
- 궁합이 맞지 않는 동료로부터 불쾌한 말을 들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는 세 가지 고민.
그런데 그 근저에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머리가 만들어낸 감정의 파편에 불과하다.
감정적인 사람의 뇌는 원숭이나 고릴라 수준이다
직장인이라면 이런 경험은 없는가. 꼭 성공하고 싶은 거래처에서의 프레젠테이션. 그런데 회사를 떠나기 전에, 평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는 바람에 마음이 불쾌해졌다. 출장 나가는 길에 택시를 눈앞에서 놓쳐서 초조하다. 초행길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허둥지둥한다. 내 손에 들려져 있는 핸드폰이 울리고 있는 와중에, 놈들이 별 것도 아닌 일로 상담을 해와서 짜증이 난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화가 났는지 정작 프레젠테이션을 잘 못했다....
인간은 감정으로부터 강한 지배를 받고 있다. 불편한 일이 있으면 분노에 사로잡히고, 불합리한 일이 있으면 충격을 받아 사고와 행동이 감정에 좌우된다.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냉정해져야 한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에 의한 사고와 행동의 혼란을 완전히 컨트롤하지 못한다.
왜 우리는 감정의 지배를 받는가? 그 이유 중 하나는 뇌 진화의 역사에 있다. 감정을 주관하는 것은 대뇌변연계의 편도체라고 불리는 곳이다. 편도체를 포함한 대뇌변연계는 말하자면 아주 오래된 뇌이다. 논리적인 사고나 이성을 주관하는 것은 전두엽이라고 불리는 부위이지만, 편도체는 생명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감정(본능적인 공포나 혐오, 슬픔)을 주관하고 있다.
세상에는 그런 감정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과 쉽게 좌우되는 사람이 있다.
감정에 지배되어 살고 있는 사람은, 논리를 주관하는 새로운 뇌(전두엽) 보다 감정을 주관하는 낡은 뇌(편도체)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원시적이라 할 수 있다.
진화의 정도로 따지면 고릴라나 원숭이에 가깝다는 뜻이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마라
사실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만큼이나 헛된 일은 없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환경 변화에 의해 생기는 생체 반응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아이들은 조금 전까지 웃고 있다가도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그래서 과자를 건네주면 바로 울음을 뚝 그친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감정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감정은 '덥기 때문에 땀을 흘린다', '추우니까 이가 덜덜 떨린다'라는 생체반응. 이는 호메오스타시스(Homeosistas:생명체가 다양한 환경 변화에 대해서, 생명 현상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도록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질 또는 현상) 중에서도 추상도가 낮은, 본능에 가까운 활동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고 불쾌해졌다. 눈앞의 택시를 놓쳐서 초조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신이 휘둘리는 감정은 모두 단순한 생리 반응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땀을 흘렸다고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초조해하고 분노에 쉽게 휘둘려서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그 감정의 늪에 빠져버린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면 어찌 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런 감정에 휘둘려 있는 사람은, '추상도가 낮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추상도가 낮은 사람은 감정에 지배되고 있다
이 세상의 만물은 정보량의 많고 적음으로 계층화할 수 있다. 그리고 정보량이 많은 것에서 적은 것으로 쌓아 나갈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개인(A 씨) → 인류 → 포유류 → 동물 → 생물'이라는 계층을 생각해 보자. 이때 정보량이 많은 상태를 '추상도가 낮다'라고 한다. 정보량이 적다는 것은 어떤 사물을 더 적은 정보량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류'와 'A 씨'를 비교했을 경우 A 씨는 '몇 살에' '○○사에서 ○○일을 하고 있고', '얼굴 어디에 점이 있다'와 같은 사항은, '인류'보다 디테일해지는 만큼 정보량이 늘어난다. 따라서 '인류'와 'A 씨' 사이의 계층에서는, '인류'가 'A 씨'보다 추상도가 높은 인식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해가 어려운 사람은, '추상도'를 '시점의 높이'로 생각하면 파악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A 씨'와 '인류'를 비교했을 때, '인류'가 정보량이 적고 추상도가 높다.
'A 씨'를 정의하는 경우, 'A 씨'는 "○○집의 장남이다"라는 식의 정의에서 추상도를 하나 올리면, "A 씨는 서울시민이다"가 된다. 여기서 추상도를 하나 더 올리면 "한국인"이 되고, 또 추상도를 올리면 "인류" → "생물"이 된다.
즉, '○○집 장남 → 서울 시민 → 한국인 → 인류 → 생물' 순으로 추상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시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말하면, '회사에서 일하는 나'를 추상도(시점)를 높여 가면, 직장의 나 → 부서의 나 → 회사의 나 → 업계의 나 → 한국의 나 → 아시아의 나 → 세계의 나 → 인류의 나......라고 시야가 넓어진다.
그럼, '추상도가 낮으면 감정에 지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상도가 낮은 사람은, 불필요하게 마주치는 정보량이 많아져서, 그것에 일일이 반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순간의 '회사에서 짜증 나 있는 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시점이 낮고 시야도 좁다. 그러므로 짜증 나는 일이 생기면 감정이 머리끝까지 솟구친다. 즉 감정에 지배되어 버리는 것이다.
반대로 추상도(시점)를 높여가면, 시야를 넓히고 잔가지와 같은 정보를 줄여서, 감정으로부터 받는 영향을 억제할 수 있게 된다.
'직장 → 부문 → 회사'와 같이 추상도를 올리면, '내가 감정적이면 부하 교육에 나쁘다. 정신 차려야지. → 이 부서에는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 회사 경영 상황이 어려워서 다들 짜증이 나기 쉽다. → 내가 무드 메이커가 되어야지'라는 식으로 세세한 부분으로 향해있는 의식을 좀 더 높은 차원의 계층으로 가져갈 수 있다.
이처럼 짜증과 답답함에서 벗어나, 감정이라는 파편더미에 파묻히지 않으려면, 추상도를 올리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정보에 쫓기며 정리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즉 매우 추상도가 낮은 상태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그런 사람일수록 감정의 지배를 강하게 받는다.
프레젠테이션을 절대로 성공시키고 싶다는 눈앞의 목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체반응에 지나지 않을 감정에 휘둘리고 만다. 이것은 결코 드문 예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감정의 파편을 모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면, 먼저 감정이라는 폐기물을 처분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추상도를 올리면 된다. 추상도를 올려 시점을 높이면, 전두엽이 활동을 개시하고,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의 작용에 개입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부정적이거나 불필요하게 세세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을 지니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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