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학이 나에게 준 교훈
나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고, 1년 가까이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다니던 직장에 휴직서를 내고, 정신과 치료와 상담 등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 정신질환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재활의학이 어떤 면에서는 정신과적 치료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번아웃, 우울증 등으로 눈앞에 있는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생각은 넘쳐흐르지만 몸은 움직여주지를 않아서 계속 침체되어가는 기분을 오랫동안 맛보며 지내던 나에게, 재활의학은 이렇게 돌처럼 굳어있는 나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되돌려주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뇌라는 장기에 휘둘리지 마라
재활의학이 나에게 가르쳐 준 교훈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가, '성격'이나 '의욕'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원인은, 뇌가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모드'로 전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일을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하아, 슬슬 시험공부해야 되는데...'라는 걱정만 하거나, 마음의 역학을 거슬러 근성과 노력, 인내라는 막대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방법으로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뿐이다.
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 몸의 감각을 잘 통제해야 한다
사실 걱정이라는 실체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의 몸이 지닌 오감으로 받아들인 자극을 뇌가 제멋대로 해석해서 '마음'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그 마음이라는 세계에 나의 모든 정신적 에너지가 갇혀있으면, 뇌라는 장기가 만들어 낸 호르몬의 작용에 의해 내 몸이 찌들어간다. 그리고 결국에는 뇌에 휘둘려서 '생각한 대로의 동작'을 취하지 못하고, 할 일을 미루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뇌에 휘둘리게 하는 원인이 우리들과 외부세계를 이어주는 오감이라는 센서가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부세계에는, 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많은 마음이 발생하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는 요소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생각한 대로 몸을 움직이려면 적어도 이러한 방해 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우리 뇌로 통하는 입구와 출구(어떻게 보면 출구가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입구이기도 하다)를 잘 통제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그럼 우리 몸의 감각을 잘 어르고 달래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몇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시각: 우선은 불필요한 물건을 시야에서 배제해라
뇌는, 눈으로 들어온 정보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첫 대면하게 된 사람과 만났을 때,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일까'를 판단하려고 한다. 메라비언의 법칙에 의하면, 사람의 첫인상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시각(외모, 외견)이 55%, 청각(목소리)이 38%, 언어(말하는 내용)가 전체의 7% 정도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또한, 사람의 뇌는 기본적으로 ‘절전모드’를 추구하도록 진화 혹은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전두엽이 나쁜 습관에 대해 일일이 의식적으로 판단을 하려고 하면 과부하에 걸리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는 정작 필요한 판단에 전두엽의 에너지를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해야 할 일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나쁜 버릇의 대상이 되는 물건 등이 애초에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고, 지금 할 일에 머리를 쓰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컴퓨터 모니터의 전원을 꺼버리자. 책상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수첩이나 책들도 주의가 필요하다.
청각 : '뇌가 알아서 할 마음이 생기는' 언어의 사용법
머릿속 언어가 행동을 만든다
귀로 들어오는 정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이 이야기하는 언어’이다. 사람은 사고를 할 때 언어를 사용한다. 머릿속을 언어화해서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행동으로 옮길 수가 있다. 다시 말해, 언어를 통해 뇌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참가하는 리워크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해주신 재활치료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말하는 것’과 ‘몸을 움직이는 것’은 같은 뇌의 부위가 담당하고 있으므로, ‘언어’를 ‘행동’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로 뇌 안에 말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부위가 ‘브로카 영역’인데, 지금까지는 주로 ‘말하기’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몸을 움직이는 것’ 전반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경험적 언어를 사용하라
몸을 움직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언어’는 ‘경험적 언어’이다.
경험적 언어를 사용하면 뇌 안에서 가상현실을 만들어 내어, 그 가상현실에 맞게 몸을 움직이게 된다.
그 움직임을 표현하고 '경험적 언어'로 바꿈으로써, 머릿속 가상현실에 맞는 동작을 내 몸이 맞게 재현할 수 있다.
재활치료사에게 들은 일화 중, 뇌를 조금 다쳐서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손 끝까지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된 환자의 이야기다. 그 환자에게 "오른쪽 팔을 올려주세요"라고 이야기하니, 얼굴을 찡그리며 팔에 힘을 넣어 보는 것 같았지만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환자에게 "어떤 느낌이 드세요?"라고 물어보았더니,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팔이 올라가지 않는다"라고 대답하더란다. 전자의 대답은 '주관적인 언어'이고, 후자가 '객관적인 언어'이다. 거기서부터 몸이 어떤 모습인지 초점을 맞춰나간다. 그러자, 환자가 이번에는, "내가 갑옷을 입은 것 같다", "내 손위에 무거운 돌덩어리가 얹힌 거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재활치료사는 그제야 속으로 '됐어!'를 외치며, 환자에게 "그러면 가벼운 갑옷을 입은 것처럼 움직일 수 있나요?", "아니면, 갑옷을 입은 채로 움직일 수 있나요?"라고 질문을 했더니, 신기하게도 그 환자는 단지 질문을 바꾸었을 뿐인데도, 앞에서의 경우보다 훨씬 더 팔을 잘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앞에서 소개한 일례처럼 '경험적 언어'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도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환자가 아닌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려고 할 때 경험적 언어를 사용하면 좀 더 그 일에 착수하기 수월해진다. 특히 일상생활에서는 비유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경험적 언어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그거 좀 ○○ 같은데?'라던지, '마치 ○○인 것 같네', '완전 ○○이구먼' 등등과 같은 식으로 생각하거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낸다던지 메모를 하는 등의 정확히 언어화를 해서 의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촉각 : 행동력이 극적으로 올라가는 ‘감촉’의 활용법
오감 중에 유일하게 차단할 수 없는 감각
‘감촉’은 뇌를 활성화시키는 강제 스위치이다. 느낄 수 있는 감촉이 적어질수록, 뇌는 하려고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없게 되어 ‘지금 즉시 행동하는 것’이나 ‘지속하는 것’ 이 어려워지게 된다.
촉감은 오감 중에 유일하게 차단할 수 없는 감각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뇌는 항상 촉감을 통해서 외부세계의 파악한다. 또한, 촉감은 시각이나 청각과 달리 감각을 차단해도, 방금 전 느꼈던 감각이 계속해서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
‘스스로가 만질 수 있다’는 감각이, 더욱 많은 정보를 뇌에 전해준다. 촉감에 주의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달라지므로, 몸을 생각한 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하려고 하는 행동이, 나에게 풍부한 감촉을 가져다준다면 동작이나 행동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촉감을 활용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가 있다.
- 필기도구(볼펜, 샤프 등)는 반발력이 높은 것을 사용하기. 메모를 할 때, 웬만한 것들은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활용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일기장은 다이어리에 손글씨로 작성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손글씨를 쓸 기회가 생각보다 흔치 않다. 하지만 손으로 필기를 하는 것이 감촉을 풍부하게 해 주는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 특히 필기도구를 고를 때는 아무거나 집히는 것을 사용하지 말고, 반발력이 높은 볼펜이나 샤프를 추천한다. 반발력 있는 필기도구를 사용하다 보면, 어느샌가 글씨가 쓰고 싶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꼭꼭 눌러쓰고 싶은' 감촉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 손에 때 묻는 작업을 마다하지 않기. 나는 집에서 가사노동을 아주 능동적으로 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손을 더럽혀야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손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심리적 장벽만 허물수 있다면, 다양한 종류의 감촉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특히 설거지를 할 때 맨손으로 설거지를 한다. 우울증 초창기에는 집안일을 하는 게 그저 귀찮게만 여겨졌으나, 지금은 반대로 내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한 의식이 되었다.
- 손톱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손을 깨끗이 관리하여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손을 움직이는 행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상으로 사람의 재활의학의 관점에서 오감을 통제하여, 할 일을 미루지 않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우리가 사고판단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여, 그 결과로써 행동을 막힘없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우리 몸의 사령탑인 뇌가 작동하는 역학적인 원리 자체를 인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므로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 할 일을 미루지 않는 뇌과학적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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